[에스티비] 선수·회장·원장 '1인 3역'에도 28년 만에 우승한 한종진 9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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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8 08:00
"시니어 대회 출전하면서 매일 아침 공부 다시 시작했다"
"프로기사회장으로 기금운용 개선했고 시스템도 바꾸고 싶다"
"스미레는 머지않아 김은지와 세계 여자바둑 정상 경쟁할 것"
"바둑도장에서 '제2의 신진서' 키워보고 싶다"
(서울=연합뉴스) 천병혁 기자 = 한국기원 소속 총 434명의 프로기사 중에서 아마도 가장 바쁜 이가 한종진(45) 9단일 것이다.
한 9단은 현역 프로기사로 직접 경기에 나서면서 한국프로기사회 회장을 맡고 있고 바둑 도장도 운영하며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세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다 보니 아무래도 본업인 바둑 공부는 소홀해지기 마련이다.
그런 그가 지난달 29일 열린 2024 울산광역시장배 프로시니어최강전에서 깜짝 우승을 차지해 주변을 놀라게 했다.
한종진은 1996년 프로 입단 이후 2000년 10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 준우승을 차지했고 2003년 삼성화재배 16강, 2004년 6회 농심신라면배 한국 대표 등으로 활약했으나 우승컵은 28년 만에 처음 차지했다.
그것도 대회 16강부터 조훈현·유창혁·서능욱 9단 등 왕년의 강자들을 차례로 꺾은 뒤 결승에서는 '바둑 황제' 이창호(49) 9단에게 극적인 반집승을 거뒀다.
당시 한 9단은 방송 인터뷰에서 "죽을 때까지 우승 못 할 줄 알았는데 너무 기쁘다"라며 "(이)창호 형이 후배한테 한번 (우승) 기회를 준 것 같아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혀 화제를 모았다.
우승 이후 보름여가 지난 16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 나선 한종진 9단은 "아직도 기분 좋은 일이지만 일상은 별로 달라진 게 없다"고 했다.
"주변의 축하를 많이 받긴 했으나 내 생활은 똑같다"고 밝힌 그는 "매일 프로기사회 회장으로서 업무를 수행하면서 바둑도장도 챙긴다. 그리고 틈틈이 바둑 공부도 하고 있다"라며 여전히 세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음은 한종진 9단과 일문일답.
-- 시간이 조금 지났지만, 입단 28년 만에 첫 우승을 거둔 소감은.
▲ 주변에서 축하를 많이 받으면서 기분 좋은 시간을 보냈다. 우승 당일은 너무 좋았는데 지금은 날아갈 듯한 기분은 아니고 묘한 감정이 들기도 한다.
-- 당시 바둑이 중반까지 크게 앞서다 이창호 9단에게 추격당하면서 극적인 반집승을 거뒀는데 대국 심정은 어땠나.
▲ 초반에 너무 잘 풀려서 이게 맞나 싶었다. 어느 순간 우승이 보이니까 조금 느슨해진 부분도 있었다. 그래서 계속 속으로 집중하자고 다짐했다.
-- 한창 치열하게 승부하던 시기는 지났는데 요즘도 바둑 공부를 하는가.
▲ (올해부터) 시니어 대회(만 45세 이상)에 출전하면서 동기 부여가 돼 틈틈이 공부를 시작했다. '아침형 인간'이 되자고 생각하면서 오전 8시에 도장에 나가 기원 출근하기 전까지 한 2시간 정도 꼬박 공부하고 있다. 도장에서 어린 학생들과 함께하는 것도 좋다.
-- 2022년부터 한국프로기사회 회장을 맡고 있는데 바둑 공부보다 외부 활동이 더 많지 않나.
▲ 기사회장으로서 외부 행사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젊은 기사들과 달리 아침에 바둑 공부를 한다.
-- 기사회장으로서 그동안 중점적으로 추진했던 일은 무엇인가.
▲ 프로기사들의 은퇴 기금운용이 그동안 문제가 좀 있었는데 기사들의 동의를 얻어 상당 부분 개선했다. 또 지난 3월 출범한 챌린지리그를 통해 여러 가지 실험적인 대국을 펼친 것도 좋은 반응이 있었다.
-- 바둑계가 이제는 프로기사 중심이 아닌 팬 위주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데.
▲ 기사회장으로서 굉장히 동의한다. 다른 스포츠에 비해 팬서비스가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사실 프로기사들은 대국 외적인 것들에 신경 쓰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이제는 기사들도 교육 등을 통해 많이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있다.
-- 한국기원 인근에 '한종진 바둑도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현황이 어떠한가.
▲ 바둑도장을 시작한 것이 2014년이니까 한 10여년 됐다. 다른 도장에 비하면 아직 신생 도장이지만 그동안 한 30여명 프로기사를 배출했다.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정말 보람되고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다.
-- 일본 출신 객원 기사인 나카무라 스미레 3단도 가르쳤는데.
▲ 스미레가 초등학교 1학년 때인 2016년 부모님과 함께 도장을 방문해서 상담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스미레가 워낙 잘 둔다는 소문이 나서 다른 도장으로 가겠구나 싶었는데 얼마 되지 않아 우리 도장에 나와 본격적으로 바둑 공부를 시작했다. 그 후 일본기원에 특별 입단하면서 일본으로 돌아갔다가 올해 한국기원 객원 기사가 되면서 다시 도장 식구가 됐다.
-- 스미레의 성장 가능성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 워낙 기재가 뛰어나다. 지금도 기량이 늘고 있지만 머지않아 세계 여자바둑계 정상을 놓고 김은지 9단과 치열한 경쟁을 펼칠 것으로 기대한다.
-- 현재 3가지 일을 하고 있는데 향후 생각하는 목표는 무엇인가.
▲ 우선 프로기사로서는 다시 한번 시니어대회 개인전에서 우승하고 싶다. 기사회장으로서는 바둑계 시스템을 좀 더 개선해 다른 스포츠처럼 큰 변화를 주고 싶다. 마지막으로 바둑도장에서는 '제2의 신진서'를 한번 키워보고 싶다. 재능있는 어린아이들이 많은데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