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티비] '일정 가혹' vs '그 정도 아니다'…스타 선수들·FIFA 대치 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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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6 17:00
선수협·FIFA 측, 일정 부담 놓고 상반되는 조사 결과 발표
각국 주요 선수들은 클럽 월드컵·'48개국' 월드컵에 부담 커질 듯
(서울=연합뉴스) 이의진 기자 = "우리는 로봇이 아니다. 확실히 컨디션을 관리하고 경기 수를 줄여야 더 좋은 경기력을 보일 수 있다."
한국 축구 간판 손흥민(토트넘)이 25일(현지시간)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UEL) 경기를 앞두고 기자회견에서 일정을 축소해야 한다면서 꺼낸 발언이다.
손흥민을 포함한 최근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일제히 '경기 수를 줄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낸다.
맨체스터 시티(잉글랜드)의 핵심 미드필더 로드리도 17일 "이대로 가다가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순간이 올 거라고 본다"며 선수 파업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국제축구선수협회(FIFPRO) 유럽지부, 유럽프로축구리그협회(EL),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는 지난 7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에 국제축구연맹(FIFA)을 경쟁법 위반 혐의로 신고했다.
내년 36개 팀이 참가하는 '확장판' FIFA 클럽월드컵, 48개 참가국으로 확대 개최되는 2026 북중미 월드컵 등으로 피로 누적이 심해지고 부상 위험도가 높아질 거라고 주장한다.
법적공방을 벌이는 FIFPRO와 FIFA 측이 제시한 자료를 보면 결과가 상반된다.
FIFPRO는 경기 일정이 빡빡해지면서 피로도가 커진다는 결론을 낸 반면 FIFA 산하 연구기관인 국제스포츠연구소(CIES)는 선수들의 경기 수가 오히려 줄었다는 집계를 내놨다.
이달 초 FIFPRO 보고서 따르면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훌리안 알바레스(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2023-2024시즌 75경기를 뛰었고, 출전 명단에 포함돼 경기장에 나선 횟수는 83회나 된다.
아르헨티나 수비수 크리스티안 로메로(토트넘)는 대표팀·소속팀 경기를 모두 소화하려 16만2천978㎞를 이동해야 했다.
국제 대회가 커지면서 경기 수가 늘어나는 만큼 알바레스가 계속 대표팀에 선발된다면 한 시즌에 80경기 이상 나서야 할 수도 있다. 로메로의 이동 거리도 더 늘어난다.
월드컵과 클럽 월드컵 확대 개최로 2025∼2026년 사이 일부 선수는 최대 8차례 국제 경기를 더 치러야 할 수 있다.
2023-2024시즌에 도합 6천분 이상 뛴 선수도 적지 않았다. 슬로베니아 골키퍼 얀 오블라크(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6천851분, 잉글랜드 미드필더 데클런 라이스(아스널)는 6천326분, 네덜란드 센터백 버질 판데이크(리버풀)는 6천293분을 소화했다.
특히 FIFPRO는 선수들에게 시즌과 시즌 사이 휴식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UEFA 소속 클럽팀 선수가 유로 2024(유럽축구선수권대회)까지 참가한 경우 1년 중 88%의 시간을 소속팀과 대표팀에 써야 한다는 게 FIFPRO의 주장이다. 이 경우 이 선수가 개인적으로 쓸 수 있는 시간이 연중 12%뿐이다.
그러나 CIES가 제시한 자료는 결이 다르다. CIES가 지난달 7일 낸 보고서를 보면 2012-2013시즌부터 지난 시즌까지 연간 4천500분 이상 소화한 선수 비율은 0.88%였다.
이 통계대로라면 과도한 일정 부담을 호소할 만큼 많은 경기를 소화한 선수는 각국의 소수 스타 플레이어에 국한된 걸로 풀이된다.
CIES는 전 세계 5개 대륙별 연맹에 속한 40개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1998-1999시즌까지 범위를 확장해서 각 시즌 별 가장 많이 뛴 선수를 추려낸 결과, 브라질 국가대표로 뛴 센터백 다비드 루이스가 2012-2013시즌 6천258분을 뛰어 1위를 차지했다.
잉글랜드 미드필더 프랭크 램퍼드(2006-2007시즌), 브라질 풀백 호베르투 카를로스(1999-2000시즌)가 각각 6천241분, 6천130분으로 뒤를 이었다.
FIFPRO의 집계에서는 한 시즌 총출전 시간이 6천분을 넘은 선수가 많았으나 CIES는 1998-1999시즌부터 통틀어도 8명에 불과했다. 양측의 세부 집계 기준이 다른 걸로 보인다.
CIES 통계에서는 최근 10시즌 가운데 한 시즌 6천분 이상 뛴 선수는 2022-2023시즌의 포르투갈 미드필더 브루누 페르난드스(맨체스터 유나이티드·6천72분)뿐이었다.
1만8천932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를 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크게 유행한 2019-2020시즌을 제외하고 최근 10년간 시즌별 평균 출전 시간은 1천600분 내외로 유지됐다.
CIES는 "이번 보고서는 선수들의 부담이 커졌다는 일관된 증거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현재 축구계에 등장한 (과도한 경기 부담이라는) 내러티브와 다소 상반되는 결과"라고 전했다.
스페인 마르카에 따르면 이탈리아 명문 유벤투스에서 '후보 선수'로 분류되는 윙어 니콜라스 곤살레스는 오히려 경기 일정이 촘촘해지는 게 자신과 같은 처지의 선수들에게는 좋은 일이라며 스타들과는 다른 목소리를 냈다.
곤살레스는 "경기에 출전하고 싶은 젊은 선수가 많다. (이들이 뛸 수 있는) 좋은 경기가 많은 건 팀에도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