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티비] '눈물 꾹 누른' 박혜정, 하늘에 계신 어머니를 위한 은메달
댓글
0
조회
331
08.11 22:00
어머니 남현희씨 올해 4월 작고…박혜정, 슬픔 딛고 올림픽 은메달
(울산=연합뉴스) 임화영 기자 = 8일 오전 울산전시컨벤션센터(UECO)에서 열린 제103회 전국체육대회 역도 여자 고등부 87kg이상급 시상식에서 인상·용상·종합 1위를 한 박혜정(안산공고)이 어머니께 금메달을 수여받고 있다. 2022.10.8 [email protected]
(파리=연합뉴스) 하남직 기자 = 박혜정(21·고양시청)은 어머니와의 작별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1년만 더, 몇 개월만 더"라고 기도하며 어머니와의 시간이 조금 더 이어지길 바랄 뿐이었다.
2024년 8월에 열리는 파리 올림픽 역도 경기를 '어머니가 조금 더 버텨주시길 바라는 기준점'으로 삼기도 했다.
하지만, 박혜정의 어머니 남현희 씨는 올해 4월 눈을 감았다.
귀한 딸 박혜정이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2024 국제역도연맹(IWF) 태국 월드컵 출전을 약 일주일 앞둔 시점이었다.
박혜정은 장례를 다 마치고 태국으로 출국했다.
그리고 4월 10일 태국 푸껫에서 열린 대회 여자 87㎏ 이상급 경기에서 인상 130㎏, 인상 166㎏, 합계 296㎏을 기록해 합계 325㎏(인상 145㎏·용상 180㎏)을 든 리원원(중국)에 이은 2위로 파리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박혜정은 11일 프랑스 파리의 사우스 파리 아레나 6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역도 여자 81㎏ 이상급 경기에서 인상 131㎏, 용상 168㎏, 합계 299㎏을 들어 은메달을 수확했다.
박혜정의 아버지와 언니는 파리를 찾아 박혜정이 바벨을 높이 드는 장면을 지켜봤다.
하지만, 어머니 남현희 씨는 하늘에 있다.
(파리=연합뉴스) 임화영 기자 = 11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사우스 파리 아레나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역도 여자 81kg급에 출전한 박혜정이 131kg에 성공한 뒤 포효하고 있다. 2024.8.11 [email protected]
고인은 약 8년 동안 암과 싸웠다.
힘겨운 투병 생활 중에도 딸 박혜정 앞에서는 웃었다.
남현희 씨가 아직 곁에 있을 때, '엄마'라는 단어가 나오면 박혜정은 눈시울을 붉혔다.
박혜정은 2022년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엄마라는 단어는 내게 '눈물 버튼'"이라며 "어머니가 나를 위해 헌신하신다.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오히려 눈물을 꾹 누르며 "파리 올림픽 준비에 전념하겠다. 어머니가 그걸 원하실 것"이라고 어른스럽게 말했다.
(울산=연합뉴스) 임화영 기자 = 8일 오전 울산전시컨벤션센터(UECO)에서 열린 제103회 전국체육대회 역도 여자 고등부 87kg이상급 시상식에서 인상·용상·종합 1위를 한 박혜정(안산공고)이 어머니께 금메달을 수여받고 있다. 2022.10.8 [email protected]
남현희 씨는 2022년 10월 전국체전에서 고교생으로 마지막 대회를 치른 딸에게 직접 메달을 걸어준 적이 있다.
대한역도연맹은 2018년부터 전국체전과 소년체전 합계 부문 시상을 부모 또는 지도자에게 부탁한다.
박혜정은 안산공고 재학 중이던 2022년 전국체전 역도 여자 고등부 최중량급(87㎏ 이상)에서 인상 124㎏, 용상 161㎏, 합계 285㎏을 들어 3관왕에 오른 뒤 시상대 위에서 어머니와 마주 섰다.
남현희 씨는 박혜정에게 금메달을 걸어준 뒤 "우리 혜정이가 힘든 과정을 다 극복하고 이렇게 잘 컸다. 고마운 마음으로 혜정이에게 메달을 건넸다"며 "소중한 기회를 준 대한역도연맹에 정말 감사하다"고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당시에도 남 씨는 투병 중이었지만, 딸을 보며 통증을 잊었다.
(파리=연합뉴스) 임화영 기자 = 11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사우스 파리 아레나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역도 여자 81kg급에 출전한 박혜정이 127kg에 성공한뒤 기뻐하고 있다. 2024.8.11 [email protected]
박혜정은 선부중학교에서 역도를 시작한 직후 '포스트 장미란'으로 주목받았다.
고교 시절에는 '파리 올림픽부터 한국 역도에 메달을 안겨줄 선수'로 기대가 더 커졌다.
실제 박혜정은 2022년 세계주니어선수권, 2023년 세계선수권과 항저우 아시안게임 우승을 연이어 차지했다.
모두가 "올림픽 메달만 남았다"고 했다.
하지만, 남현희 씨는 딸에게 단 한 번도 '올림픽'을 화두에 올린 적이 없다.
그는 생전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혜정이가 올림픽 메달을 따는 게 우리 혜정이를 도와준 분들께 보답하는 길이라면 올림픽 메달을 따면 좋겠다"고 말하면서도 "엄마를 위해, 가족을 위해 올림픽 메달을 따야겠다는 부담은 느끼지 않아야 한다. 올림픽 메달이 없어도, 혜정이는 우리에게 자랑스러운 딸"이라고 말했다.
딸의 마음은 다르다.
박혜정은 파리 올림픽 직전에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는 아꼈다.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서 어머니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싶다"는 게 박혜정의 생각이었다.
남현희 씨는 파리 시상대에 오른 딸의 모습을 하늘에서 지켜봤을까.
어머니를 가슴에 품고, 바벨을 높게 든 딸 박혜정의 마음은 어머니가 있는 하늘에 닿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