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티비] 아르헨티나 1978년 월드컵 첫 우승 이끈 메노티 감독 별세(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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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10:00
마라도나 '어린 나이' 이유로 대표팀 발탁 안 해 '앙숙' 되기도
아르헨티나 축구 팬들, 리그컵 결승 후반전 시작 전 묵념 추모
실리 축구에 맞서 기술·창의성 중시한 '좌파 축구'의 대변자
(부에노스아이레스·서울=연합뉴스) 김선정 통신원 이의진 기자 = 아르헨티나의 첫 번째 월드컵(1978년) 우승팀 감독을 역임한 세사르 루이스 메노티 감독이 5일(현지시간) 향년 85세로 사망했다고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일간 클라린을 비롯한 아르헨티나 언론은 메노티 감독의 부고를 비중 있게 전하면서 세계 축구의 역사와 아르헨티나 스포츠 역사에 빠질 수 없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1938년 아르헨티나 로사리오에서 태어난 메노티는 미드필더로 활동하다 1970년부터 축구팀 감독으로 전향했다.
그는 아르헨티나 뉴웰스 올드 보이스를 비롯해 아르헨티나 최대 명문 클럽인 보카 주니어스와 리베르 플레이트,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그리고 아르헨티나 및 멕시코 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했다.
메노티의 가장 큰 업적은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1978년 월드컵에서 처음으로 아르헨티나에 우승컵을 선사한 것이다.
당시 그가 대표팀에서 뛰고 싶어 했던 신예 디에고 마라도나가 18세로 너무 어리다고 대표팀에 발탁하지 않아 서로 앙숙이 됐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축구의 신' 마라도나는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카를로스 빌라르도 감독의 지휘하에 아르헨티나가 우승하면서 8년 만에 소원을 성취할 수 있었다.
메노티 감독은 1974년부터 1982년까지 아르헨티나 축구 대표팀을 이끌었으며, 당시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의 시스템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지 언론은 메노티 감독이 클럽 경기 출전을 중요시하던 관습에서 벗어나 국가대표팀 훈련과 경기 출전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을 심어줬으며, 대표팀에서 체계적으로 훈련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 아르헨티나 축구계의 권위자였다고 보도했다.
무엇보다 메노티 감독은 화려한 공격 축구를 견지한 지도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승리만을 위해 수비적으로 나서는 '실리 축구'에 반발, 다득점·창의성·기술을 중시한 낭만적 이상주의자로 축구사에 이름을 남겼다.
정치적으로 사회주의적 이념을 추종한 좌파로 알려진 메노티 감독은 그라운드에서도 '축구적 좌파'를 자칭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 소속으로 활동하는 조너선 윌슨이나 로리 스미스 등 현대 축구사에 정통한 언론인들에 따르면 메노티 감독은 축구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좌파 축구'와 실리를 강조하는 '우파 축구'로 직접 분류했다.
메노티 감독은 "우파 축구는 삶이 곧 투쟁임을 알려주려 하고, 희생을 강요한다. 강철같이 단단해져서 어떤 방법으로든 이겨야 하고, 복종하고 (선수가 특정한 방식으로) 기능해야 한다"며 "이게 바로 권력을 쥔 사람들이 선수들에게 원하는 바다. 시스템에 맞는 저능아, 곧 유용한 바보들을 만드는 방식"이라고 실리 축구를 강하게 비판한 걸로 알려져 있다.
아르헨티나 국민의 큰 사랑을 받았던 메노티 감독의 부고가 아르헨티나 축구연맹의 공식 엑스(전 트위터) 계정을 통해 전해지자, 아르헨티나 리그컵 결승(벨레스 vs 에스투디안테스) 후반전 시작 전에 1분간의 묵념으로 축구 팬들은 그를 추모했다.
아르헨티나의 축구 영웅 리오넬 메시(인터 마이애미)도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우리 축구가 참고할 만한 위대한 인물 중 한 명이 우리 곁을 떠났다"고 애도를 표했다.